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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그립

야구 그립 배우기 제5화 금지된 구종 쓰면 X

by 야구 보는 형 202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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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에 이물질을 바르거나 흠집 등을 내어 투구하는 일. 과거에는 하나의 구질로 인정받기도 했으나 현대야구에서는 규정상 송진가루를 제외하고 일체 금지되어 있다.

보통 공의 변화는 실밥의 회전과 연관이 있는데, 위와 같이 공에 뭔가를 바르거나 흠집을 내거나, 모양이 변형된 경우에는 공 자체와는 무관한 외부적인 요소로 인한 새로운 변화가 동반된다. 이로 인해 아리랑 볼을 뺨치는 수준의 해괴한 공을 던질 수 있게 되며, 이 때문에 투타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악의 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2017 공식 야구규칙 8조 2항에 따르면 투수는 (1) 투수판을 둘러싼 18피트의 둥근 원 안에서 투구하는 맨손을 입 또는 입술에 대는 행위, (2) 공에 이물질을 묻히는 것, (3) 공, 손 또는 글러브에 침을 바르는 것, (4) 공을 글러브, 몸 또는 유니폼에 문지르는 것, (5) 어떤 방법으로든 공에 상처를 내는 것, (6) 이른바 샤인볼, 스핏볼, 머드볼, 또는 에머리볼을 던지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일반적으로 스핏볼로 유명하지만 스핏볼은 금지된 부정투구 중 하나에 해당한다. 현대 야구에서 규정한 부정투구를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이와 같은 행위를 하다 걸리면 첫 번째는 경고, 두 번째는 즉시 퇴장이며 그 외에 출장정지나 벌금과 같은 징계가 따른다.

 

스핏볼

 

 

야구공에 침 또는 이물질을 발라서 공에 변화를 주는 형태이다. 땀이나 머릿기름, 바셀린, 파라핀 등 발라서 마찰력이 떨어지는 것이면 뭐든 상관없다. 특히 진흙을 바른 것은 머드볼(mud ball)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 마찰력이 떨어져서 회전이 덜 걸리기 때문에 홈플레이트 앞에서 급격히 속도가 떨어지면서 뚝떨어지는 등 변화를 일으킨다. 현대의 스플리터와 그 유형이 유사하다. 반대로 공에 송진을 바르는 경우 회전이 더 걸리기 때문에 공이 라이징패스트볼처럼 덜 떨어지게된다.

1860,70년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스핏볼은 1900년대 초반 세크라멘토 세너터스의 투수 엘머 스트릭렛에 의해서 이름이 붙었고, 확산되었다. 스트릭렛은 스핏볼을 전파하는 데 제법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잭 체스브로, 애드 월시, 스탠 코벨레스키 등이 유명하다.

 

스커프볼

 

 

공에 사포나 손톱 가는 줄 등을 통해서 흠집을 낸 다음에 던지는 투구법이다. 특히 사포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에머리 볼(emery ball)이라고도 불린다. 흠집이 난 공을 던지면 표면의 차이로 인해서 표면을 흐르는 기류의 균형이 무너져서 흠집이 난 방향으로 휘어진다. 때문에 투수는 휘어지게 하려는 쪽 반대 방향에 흠집을 내고, 거친면을 잡고 던지면 OK. 흠집을 여러 개 내놓으면 공이 아주 제멋대로 움직인다.

스커프 볼은 클라크 그리피스가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리피스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대놓고 공을 갈아대었기 때문이다. 사포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투수는 러셀 포드인데, 이 방법으로 26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짠돌이 야구위원회는 스핏볼과는 달리 공에 직접 손상을 주는 스커프 볼에 대해서는 대응이 빨랐다. 공의 수명을 줄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커프 볼은 이미 1915년에 부정투구로 정해진다.

 

샤인볼

 

 

침 등의 물기를 바르지 않고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면 된다. 주로 글러브나 유니폼에 문질렀는데, 파우더나 부드러운 흙 등도 사용되었다. 공에 광을 낸다고 해서 샤인볼인데, 물기 없는 스핏볼이라고 보면 된다.

1915년 에드 시코트가 유니폼으로 닦다가 발견했고, 데이브 댄포스가 유명하다. 스핏볼과 달리 이쪽은 이전 사용자에게 사용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부정투구위 역사

현대 야구만을 접했을 대다수의 독자들은 위의 예시들을 보고 누구나 부정행위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야구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런 행위가 부정투구인 것은 아니었다. 저들 중에 특히 사랑받은 스핏볼의 경우 씹는 담배의 침을 뱉어서(spit) 바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정말 쉽게 던질 수 있었고, 거기에 강력한 위력까지 겸비한 암묵적으로 허용되던 구질이었다. 또 요즘은 땅에 닿기만 해도 공을 바로바로 교체하지만 당시엔 공이 거의 검게 돼서 타자가 보기 힘들게 될 때까지 쓰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인식은 1920년 8월 16일 이후 바뀌게 된다. 이날 클리블랜드 냅스의 야구선수인 레이 체프먼은 당시 뉴욕양키스의 투수 칼 메이스(Carl Mays)가 던진 빈볼에 맞고 사망하였는데, 그가 공을 피하지 못하게 된 이유로 타자가 예측하기 힘든 공의 궤적이 꼽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위의 행위들은 금지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미 데뷔한 메이저리그의 현역 투수 중에서 스핏볼을 주무기로 삼는 선수들에게만 스핏볼이 허용되도록 규칙이 제정되었다.

 

 


공식적으로 스핏볼 금지가 발표되자 미국의 메이저리그 베이스볼과 마이너리그 투수들은 당연히 한바탕 뒤집어졌다. 메이저리그의 시작인 19세기 후반부터 데드볼 시대로 유명한 20세기 초반까지 대투수라고 불리는 선수들 중에 반칙투구가 아닌스핏볼을 즐겨 쓰던 선수들은 은근히 많았고, 어쩔 수 없는 인습처럼 여겨지던 상황이 쭉 이어져 왔기 때문에 투수세계에서는 큰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MLB 명예의 전당에도 들어 있는, 메이저리그 유일 통산 1점대 방어율로 역대 방어율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진 전설의 투수 에드 월시는 경기 중간중간 결정적일 때마다 교묘하게 스핏볼을 이용하여 타자를 아웃시키는 달인으로 유명했었다. 위에 언급한 스핏볼이 주무기가 아니었던 투수들과 아직 메이저에 올라오지 못한 마이너리거들은 타자를 제압하기 위해서 새로운 구질을 개발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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